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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착한 아내 1
일산아줌마 조회수 : 2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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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착한 아내 1

 

난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눈꺼풀 하나 꿈쩍이질 못해서 감겨주고, 치켜 줘야 그나마 볼 수 있는 그런….사람들은 나 같은 상태를 가리켜, 식물인간 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표면적인 의학의 길잡이를 이용해서, 나의 상태를 단순하게 가늠해 버렸다. 난 다 들리고, 볼 수도 있었으며, 맛까지 느낄 수 있었다. 다만, 표현에 옮길 도구가 마땅치 않았을 뿐….내가 기사회생하듯,벌떡 일어나 증언하지 않은 다음에야, 이런 속안의 사정은 의학적으로 설명이 도저히 불가능 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여보, 보여요? 또 아침이에요.’

 

아내가 내 눈꺼풀을 열고, 아침을 밝혀준다. 내가 뜨고 싶진 않아도, 아내는 정확하게 9시에 내 눈꺼풀을 열어준다. 그 다음부터는 어찌 되냐구? 감겨 주기 전까지는 그냥 천장이 내 세상인 채로 지내는 거다. 내 안구 점막은 시시각각 말라 들어오고, 간간히 넣어주는 안약이나, 안연고가 그나마 나에게는 구세주다. 단 일 밀리도 안구가 꿈쩍도 않는 상태에서, 언제나 보여 지는 천장만이 있다고 상상해 본다면, 나의 지루함이 어느 정도 인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여편네 하고는…… 눈깔만 열지 말고, 하다못해, 애기들 지능개발에 쓰이는 허접한 모빌이라도 공중에 달아 놓을 것이지….하긴, 달아 놓아도 동작불능의 동공으로 인해, 초점 맞추기도 어려우니, 별 소용은 없었을 것이다. 난 천장을 노려보다 기어이 뚫어지는 상상에서부터 안 해본 것이 없다. 이렇게 누워 있으면서 보이는 것은 내 눈 위로 왔다 갔다 하는 아내의 상반신과 피곤에 찌든 얼굴……그리고, 간호사와 담당의의 무표정한 얼굴이 전부였다. 별로 진전이나 차도도 없으면서, 눈깔은 왜 그다지도 후레쉬를 비춰대면서 살펴보는지…..그래도 마누라가 나에게는 더없이 고맙기만 하다. 하루에 한번은 침대에서 일으켜, 나의 무료한 시선을 그나마 달래주려고, 꼭 재미있는 드라마나 쇼프로를 할 때쯤 이면,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데, 이게 사람, 뻑가게 만든다. 개그프로에 나온 삼식이랑 만사마의 바뀐 춤으로 인해 웃기긴 하는 것 같은데, 동작은 보이질 않고, 까르르대는 웃음소리만 들리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아니겠는가? 그러나, 아내의 웃음소리는 항상 들리질 않았다. 이렇게 누워 있은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가니, 그럴 법도 했다. 별로 넉넉하지도 않은 살림에, 나까지 병원비 뭉텅뭉텅 까먹으면서,이렇게 기약 없는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자니, 웃음이 나오겠는가 말이다.

 

‘지난 밤에 별다른 변화가 있었나요? 자, 어디 봅시다. 유린(오줌)도 이만하면 양호하고….’

 

나에게는 평상시, 자유자재로 조절과 참기가 가능했던 배설작용조차, 이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 무식하게 생겨먹은 간호사 년이 무슨 닭꼬치 꿰듯이, 사람 아파 디질 것처럼, 뇨관을 그 좁은 좇구녕 사이로 찔러 넣는데, 눈물이 찔끔 다 나왔다. 진짜로 눈물이 나온 건 아니고, 그건, 뭐 거짓말 쫌 보태서 한 말이긴 해도,사람들은 이런 상태에서 느낄 수 없다고 단정 짓는 버릇을 난 호되게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 죽은 거 아니거덩요? 다 느끼고, 지랄 떨 쭐 알거덩여?

 

그 말이 목구녕이 아니라, 혀끝에서 조차, 뱅뱅 돌았지만, 마음뿐이었다.

 

‘눈동자가 조금 움직인 거 같았는데여….’

 

‘이런 상태에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동공이 빛에 아무런 반응을 하질 않는다고 말씀 드렸죠? 가끔 눈을 껌뻑 하기도 하고, 눈 주위가 부르르 떨릴 때도 간혹 있습니다. 누차 말씀 드렸지만, 그건 반사적인 본능의 전달이지, 스스로의 의지가 가미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놀라실 것 까지는 없지요.’

 

개쉬키 같으니라구!, 누차는 무슨 얼어 죽을 놈의 누차? 내가 이래 뵈도, 기억력 하나는 끝내 준다구, 오늘까지 치면, 단 세 번 지껄였구먼. 아는 건 좇도 없는 견습의 주제에, 뻥 치기는…

 

‘썩션은 자주 해 주시죠?’

 

하여튼 의사 쇄끼들은 좇도 아닌 곳에 영어를 써요. 내 의사 쇄끼란 놈들 치고, 미국 사람이랑 초면에 만나서 버벅대지 않는 놈을 못 봤네. …….년은 쫌 다르려나? 아니, 가래는 자주 뽑아내 주시죠? 이렇게 물으면 얼마나 좋아? 좇도 아닌 영어, 꼭 써 재끼면서, 닝기리, 지가 의사입네 내세우고 다니면, 누가 세금 깎아 준다든, 아님, 생방송 연예가 중계에서 번쩍 스타로 띄워 준다디?

 

‘항상 하루에 한번씩, 욕창도 검사해주시는 거 알고 계시죠?’

 

아내가 제일 힘들어하는 것이 세가지가 있었는데, 오줌이야 지 맘대로 나와도, 새는 법도 없이 비닐 봉지에 담겨지니 문제가 없었지만, 그래도 살아는 있다고, 이틀에 한번 꼴로 싸 재끼는 대변을 치우는 일과, 목욕을 시키는 일, 그리고, 하루에 몇 번씩 내 몸을 호박전 부치듯이 휘까닥 뒤집는 일이 그러했다. 난 이렇게 되기 전에는 왕성한 식욕으로 아내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몸이다. 못 먹는 음식이 없었고, 가리는 것은커녕, 없어서 못 먹는, 이른바, 질보다 양으로 승부했던 위대한(?!) 아쟈씨. 그러나, 지금은 처량하게도 유동식 호스가 식도에 꼽혀 있어서, 음식의 맛을 기억조차 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하여간, 난 병원을 상대로 할 말이 참 많았다. 그 유동식 호스에 대한 것도 그랬다. 맛이 없으면, 냄새라도 좀 괜찮은 것으로 해 주든가, 이건 뭐 미숫가루도 아니고 설랑…..게다가 왠 똥은 그렇게도 많이 싸게 허는지…..고생하는 마누라 생각해서, 토끼 똥처럼, 하기스에도 안 묻게시리, 때구르르 굴러가게 해주면 좀 좋아? 그것도 씨부럴, 풀죽 같이 죽죽 쳐지게 삐대질 않나, 아니, 내가 이 나이에 핏땡애리도 아니고 설랑, 푸른 똥은 왜 싸게 만들고 지랄이야, 지랄은?

 

‘저, 이따가 원무과로 좀 내려오시라고 하던데….’

 

‘네.’

 

아내의 목소리가 힘이 없어지고, 한숨이 섞일 때는 바로 원무과 호출이라는 전언을 간호사가 전할 때다. 없는 돈에 닦달을 한들, 나올 건덕 지도 없었을 것이고, 겨우 자기 입에 풀칠이나 할 정도의 일거리 밖에 없을 것인데……난 아내가 몸을 뒤집어 줄 때마다, 병실의 구석에 쌓여 있는, 인형 무더기와 붙이다 만 인형 눈까리 때문에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날이 밝을 때, 눈꺼풀을 열어주고 나서, 좇나리 눈이 매울 때는, 밤사이 잠 한 숨 안자고 마늘을 깠다는 얘기였고…..아마 아내의 두 손은 자세히 볼 순 없었지만, 엉망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아내는 가끔 밤사이 자리를 비운다. 밤사이 할 수 있는 일거리를 따온 날이라든가, 그나마 코딱지만한 집구석이라도 사람의 온기가 가시고 나면, 먼지랑 바퀴벌레 밖에 들끓는 게 없는지, 아내는 집을 치우러 그렇게 가끔 자리를 비우곤 했다. 그 날은 아내가 야간 공사장의 함바집에 설거지보조로 자리를 비운 날이었다. 옆 침대의 민식이 아빠는 교통사고로 인한 전신 골절상으로 나처럼은 아니라고 해고, 좇대가리랑, 뿡알 빼고는 전부 깁스에 붕대로 아주 도배를 한 경우다. 아내가 자리를 비우고, 내 청각은 평상시 보다 몇 갑절은 민감해져 있던 그날 밤, 민식이 아빠의 안 사람이 밤을 새기 위해선지, 뭔지는 모르지만, 오랜만에 자리했다. 얼굴은 보질 못했다. 어찌나 바쁜 일이 많은 여잔지, 병실에 잘 들르는 법도 없었다. 그나마 살기는 넉넉했는지, 간병인이 꽤나 열심으로 움직이는 걸로 보아, 돈은 쫌 있는 것 같았고….

 

‘자기야! 자니?’

 

‘으뜨크 와쓰, 브쁘ㄹ트ㄴ데(어떻게 왔어? 바쁠텐데?)’

 

‘바빠도 와야지. 무슨 소리야?’

 

‘느 스므그니?(너 술먹었니?)’

 

‘쉿! 누가 들을라? 안 먹겠다구, 안 먹겠다구 그랬는데, 팀 회식이라 무작정 뿌리치기도 쫌 그렇고….., 양주 딱 세잔 마셨어.’

 

하이구, 믿을 껄 믿어야쥐! 이렇게 건너 침대에서도 술 냄새가 핑핑 날라 댕기는 걸 보면, 석 잔이 아마도 머그잔 이 분명할 터, 으이그, 민식이 아빠! 당신 누워 있는 동안, 참 별일 씩이나 많은 갑서!, 댁의 그 경을 칠 여편네한테 설랑…..

 

‘내가 책 사왔다!’ 아니, 좇 이랑, 뿡알 빼고, 온 전신이 미이라 씨츄에이숀 인데, 뭔 놈의 독서?

 

‘이거, 보는 책이 아니고, 듣는 책이야. 당신 같이 누워있는 환자들을 위해서, 베스트셀러를 기깔난 성우들이, 연기력 팍팍 넣어서, 읽어주는 책 이거덩. 들어 봐.’

 

‘여프 스르ㅁ 드끄따(옆에 사람 듣겠다!)’

 

‘듣긴 뭘? 저 환자 식물인간 이라며? 어차피 음악 빵빵 틀어도 모를 텐데 뭐. 아함! 졸려, 당신 이거 틀어주고, 난 옆에서 눈 쫌 붙여야쥐. 새벽에 사우나 들렸다, 바로 출근 할꺼야, 알았지? 잘자, 아니, 잘 들어, 여봉!’

 

내 안 봐도 비디오네! 민식이 아빠, 잠들기 무섭게 튀어 나가서리, 좇나게, 씹창나게, 후장까지 싸비스로 내두르려는 거, 모르는 바 아니거덩여? 사우나는 무신…..아니나 다를까, 민식이 아빠가 몇 분 듣다 말고, 코까지 골기 시작하자, 그 여편네는 도둑괭이 마냥 살곰살곰 병실을 떠 버렸다. 누굴 탓하리요?

 

@@사람들은 죽음이 곧 끝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 여편네가 틀어 놓고 간 그 책을 민식이 아빠 대신에 내가 다 듣게 생겼네. 쩔꺽대던 소음으로 보아 그 책은 CD버전이 분명했고, 민식 아빠 옆에 놓인 CD플레이어를 조작했던 것 같았다. 난 그날 밤, 새벽이 되기 전까지, 꽤나 재미가 쏠쏠한 그 책을 하나도 빼놓질 않고, 들었다. 뭐 성우가 연기력을 팍팍 집어 넣은 것은 아니고, 남다른 목소리로 그냥 읽어 주었다는 점이 독특했다. 내용은 정말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지어진 책이라는 것에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이른바, 영혼의 힘이라는 내용인데, 쉽게 싹둑 잘라 얘기하자면, 인간에게는 령을 살아있는 상태로 이탈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신체에서 이탈된 영혼을 생령(生靈)이라고 부르게 된단다. 뻑 하면 문자 쓰는 인간들이 부르는 말로는 그런 현상을 유체이탈이라고 한다나? 난 그 책을 들으면서 호기심이 빡시게 당겼다. 죽은 시신에게서 이탈된 영혼은 마음먹은 대로 갈 수 있었지만, 생령은 한정된 범위만을 다닐 수 있었고, 공간의 이동도 극히 제한된다는 약점이 있기는 했어도 말이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라! 한치도 꼼짝할 수 없는 몸을 빠져 나와, 자유롭게 병원 안이라도 다닐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은, 정말 흥미진진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에….우선 그 책에서는 심신의 안정과 집중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죽기 전에 한번만 들어도 해탈한다는 사자의 서(死者의 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현실적인 길라잡이로 인해 나는 곧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맘먹었다. 나의 시선이야 어차피 초점조차 맞질 않으니, 무얼 보고 있는 자체도 우스운 얘기였고, 이렇게 저녁이 되면, 아내는 가게 셔터 내리듯이, 기계적으로 눈꺼풀을 내려버려 나는 깜깜한 방안에 혼자 있는 것 같은 상태에서 수면에 들어가기 때문에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은 식은 죽 먹기 보담 쉬웠다. 그 날부터 나는 할 일이 생긴 것에 대해서 하늘에 감사했다. 시체처럼 누워 있으면서 생명보조 장치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끔찍했건만, 이렇게 내 안에 살아 숨쉬는 스스로의 의지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활기를 가져다주는 일이 분명했다. 난 그 날로부터 2,3일 동안 무진장 애를 썼다. 어떤 때는 책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느낌이 찾아 올 때도 있었지만, 곧바로 현실의 나락으로 떨어져, 나의 상실감은 커져만 갔다.

 

그러던 며칠 후,

 

‘저 원무과에서 급히 찾으시는데여…’

 

‘네?’

 

오랜만에 시원하게 등짝을 까놓고, 건포마찰을 하던 아내가 화들짝 놀라서 나를 바로 뉘였다. 급히 찾는다는 말이 무얼까? 아내는 하던 일을 뒤로 하고, 병실을 나갔다. 난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아내의 뒤를 따라가서 뭔 일이 있는지 알아봐야만 직성이 풀릴 듯싶었다. 난 급한 맘을 가라앉히면서 책에서 나온 대로 정신을 또렷하게 차리고 집중을 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음속의 안개 같은 것이 사라지면서, 난 갑자기 공중에 출렁 하면서 몸이 물위로 뜨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 평소의 희뿌연 영상과 틀리게 또렷이 초점이 돌아오는 천장……책에서 그랬듯이, 생령의 상태가 되면, 평소에 볼 수 없었던 것도 볼 수 있게 되고, 시력은 정상을 찾아나간다고 되어 있었는데……난 흠칫 놀라 고개를 옆으로 돌려 버렸다. 코앞까지 근접해 들어가는 천장에 그나마 누가 밟고 지나간 듯한 콧대마저 찌그러들까 싶은 반사적인 본능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내 령이 공중으로 떠오르면서 나타난 부유현상에 불과했다. 난 풍선처럼 공중에 둥실 떠버린 것이었다. 성공이야! 그러나, 몸은, 아니 나의 생령은 그다지 현실적으로 제어되질 않고 있었다. 우주인의 공중유영처럼 팔다리만 졸나 흔들었을 따름이지, 제자리를 찾아 평소처럼 땅을 딛고 서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난 그제 서야 책에서 얘기한 인용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신체가 없는 생령은 자신의 의지만이 현실에서 적용된다는 것에 익숙해져야만 합니다. 땅이 존재한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그 견고한 건축물이 생령 앞에서는 한낱 허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거침이 없이 통과될 뿐이고, 설사 그 위에 서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끝이 없는 모래지옥처럼 한없이 빠져 들어가게 될 겁니다. 그 끝이 무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난 그제 서야 신체조차 현실적인 물질을 갖고 있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보이는 것들은 모두 내 영혼 앞에서, 내 의지가 정의하지 않고서는, 투명한 바람 같은 존재일 따름이고, 그나마 병원이라는,  병실이라는 인공적인 건조물을 딛고라도 서 있으려면, 나의 의지는 그것을 생령의 현실에 존재하는 것처럼 인정하고 믿어버려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 그렇다면, 내 생력에 중력을 주자 말이지.  그리고, 다음에는 바닥이라는 상태를 견고한 그 어떤 것으로 인정해야 된다 이 말씀이지?’

 

그런 의지가 정의되고 나서부터 나는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난 몸을 뒤집어 발쪽을 바닥으로 향하게 하려고 했지만, 생령의 눈으로 내 자신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다만 내 의지가 그렇다는 것 뿐….나의 눈 앞에는 복잡한 생명유지 장치에 둘러싸인 멍한 표정의 내 시체 같은, 현실의 모습만이 들어 올 따름 이었다. 나이면서도 나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되는 체험…..독특한 기분 이었다. 난 쑥스러운 마음에 손을 올려 평소의 버릇처럼 뒤통수를 긁으려 했다.

 

‘어? 이게 뭐지?’

 

그건 내 몸과 연결된 혼줄 이었다. 뒷목과 두개골 사이에서 자라난 듯한 그 동아줄 같은 굵기의 물체는 나의 몸과 연결되어 있었고, 책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생령의 상태에서 그 끈이 끊어지면, 신체는 사망하게 되고, 생령은 구천의 혼령으로 바뀐다는 것이었다. 그 끈으로 인해 나의 행동반경은 제약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의지와 달리 멀리로 갈 수는 없는 노릇 이었다.

 

‘자, 이제, 병실을 나가볼까?’

 

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나를 다시 돌아다보았다. 평소에 들리던 맥박의 파형음보다 조금 느린 리듬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신체는 영혼이 잠시 출장 나간 사이,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정말이지, 무의식적으로 작동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병실의 문고리를 잡으려다가 가가대소 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상태가 생령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평소대로 현실의 육체를 움직여 무언가를 작동시키려고 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건 불가능했다. 내가 의지로서 눈앞의 물체를 고정화시키지 않고서는 쥘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는 것에 아직 적응하기 어렵다는 걸 의미했다. 난 그냥 통과하기로 했다.

 

‘와, 졸나, 기분 더럽네.’

 

내가 병실의 문을 통과하는 순간, 나의 생령을 통해 낱낱이 느껴지는 베니어합판의 압착된 죽은 나무 세포, 하나하나와 그 속을 뚫고 통과하면서 느껴지는 쇠못들의 날카로움까지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난 이미 복도에 나와 있었다. 병실에 무의식 상태로 실려와서 인지, 난 병원내의 지리에 어두웠다. 난 걷는 기분으로 이제는 바닥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내가 병원의 안내도를 보기 위해 안내판 앞에 서 있는 그 잠깐 사이, 나를 통과해서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몸뚱아리가 아까 그 병실 문처럼, 나에게 많은 끔찍한 느낌들을 전달해주고 있어서 그 자리에 오래 버티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저 휠체어를 밀고 있는 저 할머니, 몸 안에 지금 밀고 있는 할아버지 보다 더 심각한 암 덩어리가 쑥쑥 자라고 있는데,…쯧쯧….아이구, 저 년, 임신했는데….허허…..저 애는 남편 애가 아니구먼…..’

 

난 원무과의 내부로 들어가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있었다. 아내가 훌쩍이면서, 원무과장으로 보이는 남자 옆의 책상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그 두 사람의 옆에 섰다.

 

‘아주머니, 사정이 딱한 건 알지만, 우리도 땅 파먹고, 이 짓 허는 거, 아니거덩여.’

 

‘아니, 제 말은….. 지금 현재로도 제 힘으로 감당이 안 되서….’

 

‘그러니 드리는 말씀 아닙니까? 부군 되시는 분, 당장 산소호흡기만 떼도, 돌아가시는 거 시간문제 라니깐여? 뭐 안락사를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만……., 산 사람이라도 살려면, 이쯤에서 떠나보내시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을….’

 

‘아니, 그럼 눈땡이처럼 뿔어나는 병원비는 워쩌실 껀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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